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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오마이뉴스 - 서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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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주고 입혀줄테니..." 명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발달한 민요나 잡가를 일컫는 '서도소리'는 소리의 발원지인 북한에서도 이미 그 명맥이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단 이후 7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통일의 봄을 기다리며 한명순 명창은 노래한다. 전수받은 소리를 전함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옛 소리 복원을 통해 과거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고, 후학 양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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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사장시킨 노래, 그걸 지켜 낸 남한 사람

  (1편에서 이어집니다) 서도소리의 명맥을 잇기 위해 후학을 양성하고, 고음반을 구해 들으며 복원에 힘써온 한명순 명창은 북한에서 태어난 소리가 제대로 자라나지도 못하고, 사장되어버린 상황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나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잖아요. 그곳 출신 분들이 내려와서 하시고, 저희가 2세대인 셈인데, 북한에서는 아예 명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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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귀한 전통 사라질까봐..." 사명감으로 택한 길

옛 선비들이 한자를 공부할 때 글귀에 가락을 붙여 읊조리던 것에서 유래된 송서·율창은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낭독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한자사용 비율 감소 추세와 전수의 어려움 때문에 사장(死藏) 위기에 처한 전통예술을 현대에 되살린 이가 바로 유창 명창이다. 2009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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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찾아와 배우는 노래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2009년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율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이래 유창 명창은 송서·율창의 명맥을 잇고, 대중화를 도모하기 위해 힘써왔다. 그동안 90명에 달하는 이수자를 비롯해 수많은 전수자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종묘 옆에 위치한 송서율창보존회 전수관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송서·율창의 미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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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현류 대금산조' 창시자의 기막힌 연주 인생

  원장현 대금 연주가가 들려주는 선율에 귀 기울이면, 탁해진 마음이 정화되면서 처연한 슬픔이 마음에 잔잔히 내려앉는다. 감정의 변곡점을 따라 명상에 다다르면, 어느새 너른 자연의 품이 펼쳐진다. 그의 음악이 피와 뼛속을 타고 흐르는 한국인의 원형에 맞닿는 길임은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원장현류 대금산조'의 창시자로서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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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10분도 지루하다는데 외국은 40분이 기본"

(* 원장현 대금 연주가 인터뷰① 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는 활발한 공연활동과 음반 발매를 통해 대금의 대중화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93년부터는 '원장현과 아시아음악'이라는 타이틀 아래, 인도·베트남·중국·일본·몽골 등 아시아 각국의 전통 음악인들을 초청한 공연을 선보이면서 서로의 음악이 활발하게 교류될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 처음 음악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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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도 한곡 해봐" 김뻑국의 인생 바꾼 이후락과의 술자리

  격동의 시대, 재담은 민중들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다. 풍자와 해학이 응축된 이야깃거리에 신명나는 노랫가락을 더한 재담의 재미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중심에는 소리와 춤을 모두 섭렵한 종합예술인, 김뻑국이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눈앞에 팔도강산이 펼쳐진다. 지역별 문화와 특산물을 쉴 새 없이 청산유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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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연예인, 재주꾼... 여기 안 거쳐 간 사람 없어요"

(1편에서 이어집니다) 화려한 무대에 서면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지만, 그는 예술단 창단 이래 노인들이나 소외 계층을 위한 자선 공연을 꾸준히 열면서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표창장(1998년)부터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1994년), 국방부 장관상(1996년), 김대중 대통령 감사패(1998년) 등 수많은 표창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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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해외서 폭발적 관심, 그만큼 서글픈 게 없습디다"

  홍성덕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의 삶은 오직 '국악'이라는 한길로 통한다. 판소리 명창으로 시작해 여성국극의 부흥을 이끌고, 국악의 발전과 국악인의 처우 개선에 힘써온 시간들이 바로 그 증표다. 예인에서 예술 행정가의 삶을 넘나들면서 국악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하고, 4대 판소리 가족으로 국악의 명맥을 이어가는 그녀의 '국악 예찬론'에 귀 기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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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눈시울 붉히게 만든 국악인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국악 활성화와 국제교류, 국악인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 그녀의 공로가 인정받으면서 2016년에는 제26대 이사장을 연임하기에 이른다. 홍 이사장은 협회 회원들의 의견에 항상 귀 기울이면서 원활한 소통에 힘쓰는 한편, 해외에 나가 판소리 강좌를 열며 외국인들에게 국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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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까지 빌리며 54살에 전업 "이 일이 정말 재밌어요"

    문득 올라간 옥상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황홀했다. 바쁘게 일하면서 앞만 보고 지나쳤던 때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 거기 있었다. 그곳의 정경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 외침에 따라 펜을 잡은 것이 소박한 시작이었다. 그리는 나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화가'라는 꿈도 선명해졌다. 안정된 삶의 권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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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온 느낌" 전시 때마다 완판되는 서촌 그림

  (*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 옥상 저 옥상을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고, 옥상의 전경을 한 작품에 많게는 100시간 이상 들여 그릴 정도로 애정을 쏟은 덕분에 2015년에는 첫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그림이 한 점이라도 팔릴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그림은 매 전시 때마다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저는 굉장히 서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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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그대'는 신기한 곡, 나도 부르다 울컥한다"

(*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들국화는 1987년 해체됐고 1988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파랑새>를 통해 선보인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 등이 크게 히트했다. 그러나 1991년 2집 '언제나 영화처럼'을 발표한 이후 대마초 흡연 등으로 10년 넘게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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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관객 7명, 3일째엔 매진... 대학로 전설의 시작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한(恨)을 절절하게 녹여낸 독자적인 고음 샤우팅(shouting)은 이성의 논리를 넘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롤러코스터처럼 굴곡이 심한 인생길을 걸어왔지만, 긍정의 힘으로 일어서고 또 일어서길 몇 차례. 이제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세월이 흘러도 전혀 퇴색되지 않은 음색과 자신만의 감성을 오롯이 지켜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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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가의 그림을 소장하지 않은 사람, 한국인 중엔 없다

    대부분의 유명 작품들은 미술관을 가거나 책자를 통해서만 볼 수 있을 뿐, 여간해서는 소장이 어렵다. 그러나 이종상 화백의 그림은 다르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의 그림 하나 가지지 않은 이가 드물다. 5천원권의 율곡 이이와 5만 원권의 신사임당 초상이 바로 그의 작품인 까닭이다. 37세에 국내 최연소 화폐영정화가가 된 이래로, 고구려 문화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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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얼굴 제대로 그리려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화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http://omn.kr/1k6ix) 그는 고구려문화지키기 운동 본부장으로 활약하며 40여 년이 넘도록 고구려벽화를 연구해왔고, 1977년 화가로서는 최초로 '독도진경 개인전'을 갖고, '독도문화심기운동'에 매진해왔다. 독도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훨씬 이전부터 독도가 가진 문화적 상징성을 깨닫고, 그림을 통해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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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직장인과 시민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축제

지난 20·21일, 양일간에 걸쳐 청진공원 내 종로홍보관 앞마당에서 열린 '함께 삶장'. 종로 생활문화 예술동아리가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정성스럽게 완성해낸 결과물을 시민들 앞에 선보이는 자리였다. 다양한 체험은 물론이고, 정성스럽게 만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마켓이 함께 열려 시민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일상예술가들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 '함께 삶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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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절마다 '불효녀증후군'에 시달리는 까닭

"전 세계 어디도 마찬가지겠지. 연극을 해서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거야!" 2009년 한국 공연 팀과 아르헨티나로 투어 공연을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한 예술가가 했던 말이다. 지난 해 우연히 마주친 일본의 공연기획가는 내게 "순수하게 예술만 하고 살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의 거리예술축제를 찾은 그는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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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에 왜 채색을 금하는지 이유가 궁금했어요"

  정종미 화가가 걸어온 길은 정형화된 관습과 규정을 타파하고, 아주 천천히 우리의 것을 찾아온 여정이었다. 우리 고유의 색과 자연의 재료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그녀의 작품 세계는 영글었고,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전통의 가치를 현대에 되살리면서 우리 미술의 자생력을 키워온 화가이자 색채연구소 소장으로 한국화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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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종이부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 1편에서 이어집니다.) 미국에서 지내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해 돌아보게 된 그녀는 자신이 고국에 돌아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보다 분명히 자각하게 됐다. "한국에서 유학 갈 때, 전부 백남준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고 갔다가 뿌리를 못 내리고 수초처럼 떠다니는 국제 미아를 많이 봤어요. 저는 서른 후반에 어느 정도 제 세계가 갖춰진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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